신열도(申悅道, 1589~1659)는 1649년(인조 27)에 한진명 군수의 후임으로 부임하여 1651년(효종 2)에이임한 예천 군수이다. 의성 사람, 자는 진보(晋甫), 호는 나재(懶齋), 본관은 아주, 회당 원록의 손자,유학 흘의 아들, 적도(진사)․달도(생원)의동생, 장현광․정구․정경세의 제자이다.
부모 슬하에서유학으로서 1606년(선조39) 식년 진사시에 2등 22위로 합격했고, 1624년(인조 2)에는증광 문과에 을과 3위로 급제하였다. 역서, 박사, 전적, 6조 정랑겸 춘추관 기사관, 사간원 사간 등을 지냈다.
정묘호란(1627) 때 임금을 강화에 호종하고, 후금 나라와 화의하는 것을극구 반대하고 후금 군사를 물리칠 것을 주장 그리고 의병을 모집해서 부원수의 진으로 보내는 등 후금의 침략을 분쇄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1628년 동지사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가서 정문을쓰고 우리나라의 사정을 알려 양국 간의 우의를 더욱 돈독히 하는 글을 초안하는 등 활약이 매우 컸다.
한때는 벼슬길을떠나 학문 연구에만 몰두했으나 병자호란(1636)이 일어나자 조용히 책을 떠나 죽음을 각오한 채 남한산성으로들어가 임금을 수행하였다. 그 후 벼슬길에 다시 올라 울진 현감, 사헌부장령(1648), 예천 군수(1649), 능주 목사에 이르러서항상 청렴결백하게 선정을 베풀었다.
저서로 「선자지」, 「문소지」, 문집 5권, 친필 일기장이 있고, 교지 40여매가 전한다. 이 중 「문소지」는 최초의 의성군지이다. <張炳昌論說委員>(醴泉新聞 558號 2003.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