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신씨(鵝州申氏)의 발상지는 한반도의 남단에 위치한 큰 섬 거제도(巨濟島)의 한 지역이다.
이 섬의 행정명칭은 거제군(巨濟郡)이었다. 신라 때부터 군으로 불러왔던 큰 고을이었다. 여기에 아주현(鵝洲縣), 송변현(松邊縣), 명진현(溟珍縣)이라는 3개의 지역단위가 있었고, 이 지역단위에서 아주현에는 고려조에 와서 성씨제도가 등장하자 토호세력으로서 처음 성을 갖는수장이 있었다.
그 수장은 신(申의) 성을 취하였는바 후일 신영미(申英美)로 알려진 바로 아주신씨(鵝洲申氏)의 시조(始祖)였다.
아주신씨의 근원이 아주현의 권지호장(權知戶長) 신영미(申英美)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증명하는 문헌이 있는데, 영조(英祖) 때 편찬된 문헌비고(文獻備考)와 1924년에 발행된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를 비롯한 아주신씨의 가첩(家牒)에 신영미가 시조로 기록되어 있다.
일각에서 평산신씨로부터 분관(分貫)되었다고 하나 평산의 대동보에 아주신씨가 분적종이라는 기록을 찾을 수 없으며, 서문에 아주신씨와의 관계는 역사적 근거가 없다고 기술하였다.
또한 평산신씨로부터 2010년 아주와는 전연 관계가 없다는 공문도 받았다.1817년 청주파의 신극조씨가 청주의 김노정이가 제가의 선대세계를 가지고 있는데, 이중에익휴 이상의 아신 조상이 있다고 의성에 통지하므로 읍.귀 양파에서 각 2명씩 뽑아 각기 대표를 선출하여 귀파 도와공 신정주 읍파의 우암 신치교로 이를 조사하게 하였었다.
한 달여 머물며 확인한 결과 도와공은 학식이 풍부한 선비로서 근거없는 조작임을 모두 공감하고 돌아와 <호서기행록>을 작성하여 허위임을 밝혀 그 자료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
그 후안동보 제작자가 의성의 읍.귀 양파에 족보를 함께할 것을 제의하였으나, 평산과 연결하고익휴를 시조로하는데 반대하여 안동파보로만 발간되었다. 또한,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아주신씨에 보내온 공문에 의하면, <화해사전>은 진서가 아니며 시조 신익휴란 인물도 고려사와고려사절요에서 찾을 수 없는 가공 인물임을 확인해주고 있다.